경왕(주 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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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2.1. 희조를 완전히 물리치다. [편집]
2.2. 오나라가 초나라를 물리치다 [편집]
경왕 5년(기원전 515년), 오왕 제번의 아들인 공자 광이 오자서의 도움으로 찬탈을 꾀했다. 오자서(伍子胥)의 심복인 전제가 어장검을 생선구이 요리에 감추어 오왕 료를 척살하고, 공자 광이 오왕이 되니 그가 바로 오왕 합려다. 그 일로 합려는 오자서를 신뢰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오자서의 계략대로 요리를 시켜 공자 경기를 척살하고 오나라의 왕권은 안정된다.
경왕 6년(기원전 514년,) 세력을 기른 경왕은 희조를 물리치고 왕위를 다시 회복하였다. 희조는 경왕 15년(기원전 505년)에 죽었다.
경왕 14년(기원전 506년), 합려는 오자서를 재상으로 삼고, 제나라의 이름난 병법가인 손무(孫武)[1] 즉 손자를 등용해 함께 장병을 거느리고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을 쳐서 함락시키고 약탈을 자행하자 초소왕은 달아났다. 그리하여 신포서는 진(秦)나라로 가서 7일 간 끈덕지게 구원을 요청하여 진나라의 구원병을 얻어 오군을 쳤다. 이때 오군에 내분이 일어나 합려의 아우 부개가 반란을 일으키자 초나라에게 공자 승을 잘 대우해준다는 조건으로 회군하였고, 오왕 합려는 부개를 제거한다. 그러나 초나라의 수도 영은 피폐해 있었다. 그래서 초소왕은 그 상황을 보다 못해 수도를 영에서 약(鄀) 땅으로 천도한다.[2]
경왕 6년(기원전 514년,) 세력을 기른 경왕은 희조를 물리치고 왕위를 다시 회복하였다. 희조는 경왕 15년(기원전 505년)에 죽었다.
경왕 14년(기원전 506년), 합려는 오자서를 재상으로 삼고, 제나라의 이름난 병법가인 손무(孫武)[1] 즉 손자를 등용해 함께 장병을 거느리고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을 쳐서 함락시키고 약탈을 자행하자 초소왕은 달아났다. 그리하여 신포서는 진(秦)나라로 가서 7일 간 끈덕지게 구원을 요청하여 진나라의 구원병을 얻어 오군을 쳤다. 이때 오군에 내분이 일어나 합려의 아우 부개가 반란을 일으키자 초나라에게 공자 승을 잘 대우해준다는 조건으로 회군하였고, 오왕 합려는 부개를 제거한다. 그러나 초나라의 수도 영은 피폐해 있었다. 그래서 초소왕은 그 상황을 보다 못해 수도를 영에서 약(鄀) 땅으로 천도한다.[2]
2.3. 오나라와 월나라가 대립하다 [편집]
경왕 24년(기원전 496년), 합려는 월나라에서 월왕 윤상이 죽고, 월왕 구천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빈틈을 노려 월나라를 치려했다. 오자서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간했으나 합려는 듣지 않았고, 결국 합려가 거기서 출전했는데, 월나라의 장수인 영고에게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늙은 합려는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결국 죽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부차(夫差)가 왕이 되었다. 그는 잘때마다 장작 더미에서 잤는데[臥薪], 그때 신하로 하여금 합려의 유언을 읊게 하여 월왕 구천을 물리치기 위해 국력을 키웠다.
결국 경왕 26년(기원전 494년),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대장으로 백비(伯嚭)를 부장으로 삼아 월나라를 쳤다. 당연히 국력에서 월나라가 밀려서 월왕 구천은 회계로 달아나다가 결국 힘이 다해 결국 오나라에 투항한다. 이때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월나라를 멸하자고 했으나 패자가 될 뜻이 있었던 부차는 월왕 구천의 신하인 문종(文種)의 뇌물을 먹은 백비의 말을 들어 결국 월왕 구천을 살려주었다. 대신 부차도 생각은 있었던지라 그를 노예로 부려 감시하고 굴욕을 주었다. 바로 이때 월왕 구천은 범려의 책략대로 월나라의 이름난 미녀인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보내 오왕 부차의 마음을 샀다. 그런데, 오자서는 그들을 받지 말라 권했으나 부차가 듣지 않아서 결국 오자서와 부차의 사이를 갈라졌다.
경왕 35년(기원전 485년), 오자서는 부차의 미움을 사서 결국 오자서는 오나라 땅인 고소 땅에서 자결하였다.
경왕 38년(기원전 482년), 부차는 황구 땅에서 진(晉)나라, 노나라와 회맹했다.
경왕 42년(기원전 478년), 월왕 구천이 고소 땅을 두 차례나 치자 오왕 부차는 결국 회군하였다. 바로 이 당시에 위(衛)나라에서는 위경공이 백성들을 쥐어짜자 결국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위경공을 죽였다.
결국 경왕 26년(기원전 494년),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대장으로 백비(伯嚭)를 부장으로 삼아 월나라를 쳤다. 당연히 국력에서 월나라가 밀려서 월왕 구천은 회계로 달아나다가 결국 힘이 다해 결국 오나라에 투항한다. 이때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월나라를 멸하자고 했으나 패자가 될 뜻이 있었던 부차는 월왕 구천의 신하인 문종(文種)의 뇌물을 먹은 백비의 말을 들어 결국 월왕 구천을 살려주었다. 대신 부차도 생각은 있었던지라 그를 노예로 부려 감시하고 굴욕을 주었다. 바로 이때 월왕 구천은 범려의 책략대로 월나라의 이름난 미녀인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보내 오왕 부차의 마음을 샀다. 그런데, 오자서는 그들을 받지 말라 권했으나 부차가 듣지 않아서 결국 오자서와 부차의 사이를 갈라졌다.
경왕 35년(기원전 485년), 오자서는 부차의 미움을 사서 결국 오자서는 오나라 땅인 고소 땅에서 자결하였다.
경왕 38년(기원전 482년), 부차는 황구 땅에서 진(晉)나라, 노나라와 회맹했다.
경왕 42년(기원전 478년), 월왕 구천이 고소 땅을 두 차례나 치자 오왕 부차는 결국 회군하였다. 바로 이 당시에 위(衛)나라에서는 위경공이 백성들을 쥐어짜자 결국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위경공을 죽였다.
2.4. 유가의 정립 [편집]
2.5. 붕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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